츠지조리사학교에서 배운 것들- 辻調理師専門学校

"요리의 '이유'를 찾기 위해 떠난 일본 유학. 새벽 5시 어시장의 무보수 노동부터 미슐랭 2스타 주방의 실전, 그리고 츠지조리사학교 상위 1%의 성적까지. 손에 남은 흉터만큼 깊어진 '요리의 본질'을 이제 칼 끝에 담아냅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일반고에 다니면서 방과 후엔 요리학원으로 달려가 자격증을 따고,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요리사라는 꿈은 그때부터 분명했다.

군 복무 중에도 요리는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해병대 전군조리경연대회에서 팀이 1등을 하며 해병대 사령관 전속조리병으로 뽑혔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이력 속에서도 늘 부족함이 느껴졌다. 바로 ‘기본기’였다.

칼을 갈 때 밀어야 하는지, 당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식재료를 다루는 이유와 원리도 모르고 따라 하기만 했다. ‘이건 왜 이렇게 하지? 왜 이 재료는 끓인 뒤 식히고, 저건 바로 쓰지?’ 그때부터 요리의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일본행을 결심했다. 섬세한 손맛과 정교한 칼질, 그 안에 깃든 철학이 나와 닮아 있었다. 2년간 어학교를 다닌 후, 나는 일본 최고의 요리학교인 츠지조리사학교에 지원했다.

입학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학비만 1년에 2천만 원, 생활비까지 합치면 2년 동안 거의 1억 원이 필요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열정’이었다. 면접에서 나는 요리를 향한 진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날, 흩날리는 벚꽃 아래 입학했던 그 순간의 설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츠지에서의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조리이론’. 요리를 단순한 감이 아니라 과학으로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직접 요리를 하며 원리를 설명해 주고, 우리는 맛을 보고 분석했다. 한 번은 실습 중 손을 크게 베어 병원에 갔지만, 꿰매지 않고 돌아와 수업을 들을 정도로 그 시간이 소중했다. 그 흉터는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보다 깊게 새겨진 건 ‘배움의 기쁨’이다.

새벽 5시엔 생선시장으로 가 무보수로 일하며 생선을 배웠다. 오로시(손질) 기술을 익히고, 생선의 눈빛으로 신선도를 판별했다. 그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생선을 다룰 수 있게 됐다.

방과 후에는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사쿠라에(櫻会) 에서 일했다. ‘쿡가대표’나 ‘짠내투어’ 같은 방송에도 나왔던 곳이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밤까지 일했다. 하루가 16시간이어도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매 학기마다 있는 칼질 테스트. 특히 ‘가츠라무끼(무 돌려깎기)’는 내 인생의 과제였다. 나는 매일 밤 1시간, 쉬는 날엔 3시간 이상 연습했다. 학기 초부터 선생님들이 내 무를 보고 놀랄 정도였다. ‘3개월만에 이정도로 된다고?’ 결국 2년 동안 단 한 번도 감점을 받지 않았다. 졸업을 앞두고는 가츠라무끼에 대한 논문까지 썼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었다.내가 배운 감각이 사라지지 않길 바랐으니까.

그 결과, 나는 츠지에서 성적우수상을 받았고, 360명 중 상위 5위권 안에 들었다. 일본요리 실기 부문에서는 항상 ‘탑’이었다.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츠지조리사학교를 졸업했다.

손끝에 남은 흉터와 함께, 그때의 배움과 열정은 지금도 내 안에서 반짝인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연마장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요리를 하고 싶은 꿈이 내 안에 있다. 그날을 위해,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일본요리의 그릇과 기물들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그것들은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날을 기다리는 나의 다짐이다.